몽타주가 된다는 것 - 이수명
지금 여기에 가장 가까운 심급에 도착하지 못하는 번개를 위하여 나는 번개를 버틴다.
번개를 뒤집어쓰고 어둠의 일부인 채 어둠과 단절하면서 어둠을 밝히지 않는다. 나는
머뭇거린다. 머뭇거려야 한다. 누가 돌출되는가를 누구를 지나 흘러가는 무늬인가를
그곳에서 나는 내 그림자와 일치하는 실물인가를
그곳에서 나는 내 그림자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넓은 혀로 세계를 통분하고 있는
가를
입에서 지루한 탄약이 쏟아진다. 꿈처럼 호흡은 짧게 끊어져 밟힌다. 한 사건이 벌어
지는 심급에서부터 결코 나타나지 않는 장면의 심급에 이르기까지 나는 지금 형상을
만들지 못하는 몽타주이다. 나는 짧은 운동으로 분포한다. 한순간도 나를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깨진 두개골 속에 신을 벗어 놓은 자들과 함께
얼굴 없이 빚어지는 나의 이 다양한 표정을 보라
벽면들이 거미줄에 걸려 바스락댄다. 채찍을 맞고 있는 사실들이 빈둥거린다. 나는
막무가내로 벌을 선다. 공평하게 산산조각이 난다. 더할 나위 없이 다양해진다. 그러
므로 윤곽 없이 모든 꿈은 마주치고
유추의 피가 벌써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나는 보라
마치 꿈 속에서처럼 적절한 잠도 없이
나는 이 잠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잠의 온도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잠의 온갖 척도 아래로 다시 통상적으로
부재하는 눈을 도려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