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송곳 - 서영미
폭풍인 줄 알았는데 안개였다.
신화처럼 왔다가 좀도둑처럼 떨고 있다.
뜨겁게 다가갈수록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는,
한때는 위대한 빙탑이었다.
얼음송곳 속으로
영문 모를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가며
또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건드릴수록 격하게 각을 세우는 얼음의 침묵.
사람을 만나면 이내 흉터를 가지라 했다.
막 아문 흉터 딱지 위에 얼음탑 쌓지 말라 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얼음송곳은 스스로 무너진다.
금이 간 거울 속, 아직도 웃고 있는 그리운 혐오.
섣부른 이별은 때론 치명적인 그리움이 된다.
네가 두고 간 오래된 향수병이 유치한 슬픔을 기억한다.
미끄러운 유리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고독한 향기 마지막 한 방울, 너의 몫까지, 떨고 있는 내 통점 부위에 뿌리겠다.
뼛속이 시리지만,
이제 더는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다.
너를 찌르려니
내가 먼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