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태양을 채집한다 - 김경주
1
허공사이로 둥근 피안이 놓여지고
돋보기 알에선 오래 전 묻어있던
햇살 냄새가 난다 돋보기는 주술이다
물 속처럼 고요한 세계 속에서 햇살은
넘칠 듯 넘칠 듯 출렁거린다
어느 행성으로 가던 빛을 나는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한 생을 건너 온 맑은 시간들
종이 위로 차르르 쏟아진다
가만히 보면 행성의 마른 돌가루 같기도 한
이승의 찬 공기가 그 뜨거운 시간들에 닿아
치지직 탄다
2
생은 아련한 굴절이다
서랍 속이 복잡하던 유년, 채집망엔
수많은 시간들을 날아 온 곤충들이
날개에 붙은 보송보송한 햇살들을 털곤 했다
적금을 소매치기 당하고 낮술에 취해
돌아온 어머니의 속옷을 살 속에 넣어주는
아버지의 눈빛은 느티나무보다 젊었다
고통은 몇 개의 꽁트 같았다
나는 그 밤 우는 어머니에게 가장
웃기게 생긴 곤충 한 마리 보여주었던가
아침이면 차갑게 식은 곤충의 몸에서
부스스 떨어져 나오던 햇볕들, 그 해 겨울
우리도 지상의 계절 위에서 잠시 떨던
몇 마리 뜨거운 시간이었을까
통장에 남은 이파리들을 세어 보고
새벽 대중 목욕탕 바닥에 나란히 누워
어머니와 나는 뽀얀 수증기 한 방울씩
이마로 뚝뚝 맞으며 오래 말.없.었.다.
3
고개를 들면 공터의 생수 같은 꽃잎들
소실점 잃고 흔들거린다 멀리
송전탑이 나르는 싱싱한 전기들이
순하게 엎드린 마을의 창문마다
불씨 한 장 씩 부치고 있다
어머니 치약처럼 방안에 풀어져
타는 노을을 보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