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꽃 접는 여자 - 이영식
은유의 딱딱한 껍질도 모른다
사상의 모자 따위는 써본 적도 없다
여자는 진종일 종이꽃을 접고 있다
손 끝에서 피어나는 노동의 꽃송이 보며
밥 한 덩이 따뜻한 저녁을 생각한다
발목이 빠지도록 햇빛 넘치는 오후
지하셋방, 한 됫박의 어둠 속
꽃술에 입김 불어넣는 볼이 부풀고
하늘이 샛노랗게 내려앉는 순간
몇 개의 별이 눈가에 번뜩였던가
여자의 등줄기가 봉긋 솟는다
수북히 접어놓은 꽃무더기 속에서
여자는 한 마리 낙타가 된다
서른세 송이 종이꽃 목에 두른
낙타, 여자가 무릎을 세운다
항하사 모래 위 걷듯 걸어나간다
어둠에 길들여진 눈이 무시다
재빨리 낙타의 등을 핥아대는 불볕
비루먹은 갈색 털이 녹아 내린다
곱사등, 그녀의 둥근 알이 드러난다
쩍쩍 갈라진 마음, 안으로 마름질하고
비탈진 생의 보도블럭을 건너가는
한 잎의 여자, 꽃잎보다 가벼운
그녀의 손끝에서 사라진 지문이
색종이 이파리 물관을 트고
철사 위에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