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사랑 4 - 양병호
- 지리산 기행
꺼거걱 꺽꺽 시동이 불안합니다. 슬치 고개를 허위허위 넘어 관촌을 씽씽 달려
춘향이재에 당도할 때까지 차창 밖 영상으로 따라오는 그대를 생각합니다.
引月(인월), 이성계가 끌어 올린 낮달을 바라보니 荒山大捷(황산대첩)의 함성
소리 아우성소리 희미하게 바람에 지워지고 있습니다. 그대도 나도 덩달아 지워
지리라는 것만은 진실이므로 우울함이 덜컹거립니다. 송흥록과 김소희의 소리
그 낭차짐한 진양조 가락이 울컥울컥 지나온 날들을 건듭니다. 들킬세라 경적에
맞춰 고개를 들고 먼데 이름모를 초록산을 바라봅니다. 산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매급시 푸르기만 한 것 같습니다. 문득 흔들리는 몽상의 필름을 다시 갈아 끼웁니다,
만 골짜기를 흐르는 물줄기들은 저희들끼리 즐겁다고 살만하다고 졸졸거립니다.
언젠가는 떠날, 떠나야 할 은행나무 사이로 수국의 얄프름한 향기 뱉어내는 실상
사를 모른척 지나칩니다. 허기진 달 달 달 달궁에서 후박나무도 다람쥐도 산갈대도
여치도, 자귀나무도 뻐꾹새도 칡꽃도 말똥구리도, 가문비나무도 오소리도 산유화도
메짱이도, 회양목도 단풍새도 할미꽃도 자벌레도, 그들사이 아무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대가 없었으므로…… 홀로 산채백반을 먹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그대 쪽으로.
노고단을 오르고, 성삼재를 넘고 또 시암재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디
넘어야 할 산이 끝나는 것인가요. 저어기 천왕봉보다도 높은 그대와 나 사이의 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