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책 - 박유라 (1956~) 늦가을 부부 까치가 나뭇가지 베란다에 앉아 있다 아침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글을 읽는 투명하고 깊은 거기, 아파트 9층 높이에서 잘게 부서지는 햇빛과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물 내리는 소리, 풍경은 풍경끼리 소리는 소리끼리 아른거리며 떠올라 저 창 너머 푸른 책 속에 쟁여지겠다 내가 한 페이지 가뿐히 넘겨지는 찰나, ‘추하고 역겨운 것’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문예사조를 자연주의라고 한다. 추하고 역겨운 일상사(자연사)를 자연스럽게! 형식에 관한 한 ‘순간 문체’ ‘시간 확대경 기술’, 혹은 ‘묘사된 시간과 묘사하는 시간의 일치’로 설명하기도 한다. ‘푸른 책’이 시간 확대경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동시 촬영하고 있다. 누가 ‘아파트 9층 높이에’ 있는 ‘햇빛’과 ‘그릇’ 씻는 소리를 동시에 포착하였는가. 동시에 시적 화자의 인생이 ‘한 페이지 (…) 넘겨지는 찰나’와 함께 ! 박유라 시인 ! <박찬일·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