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흑고니랑 친구하는 날 - 박제천
붓 한 자루, 겨울 하늘에 일필휘지로
쓰윽쓱 써 나간다
전서체의 저 문장,
문자는 보이지 않아도
문장이 읽혀지는 이 재미,
붓 한 자루, 얼음 물감 듬뿍 찍자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반짝이는 얼음 눈동자,
눈동자가 써 나가고, 읽어 주는 대로 듣기만 하는
이 재미,
혼자 살아,
노여움도 없고 미련도 쓸쓸함도 없어선가
그 문자가 벙어리 啞(아)로 보이면
입 다물고
그 문자가 웃을 笑(소)로 보이면 함박웃음을 머금는다
친구하자고 겨울 하늘에 나타난
저
새 한 마리,
흑고니랑 친구로 지내는 이 재미.
찾아갈 곳 없어도, 저 하늘만 있으면
새 친구들이랑 글 읽는 재미,
한세상 살 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