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아우성 - 유안진
시끄러워 잠이 깼다
창유리에 달라붙은 반투명의 아우성
떼지어 엉키며 부풀면서 퍼져 나가며
쉴새없이 휘돌며 되울리는 메아리조차 자욱하다
고요가 이렇게도 소리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청이 이렇게도 깊고도 요란할 수 있다니
고요의 목소리가 내설악을 통째로 삼켜 버릴 수 있다니
귀를 틀어막고 우왕좌왕하다 보니
먼데 산봉우리 하나가 모가지만 내놓은 채 허우적거린다
세상은 거대한 안개바다
깊이 모를 대양(大洋)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아우성만
끼리끼리 휘돌며 메아리치고 되받아친다
한나절을 기다려 나가 보니
산자락 자락마다 선혈이 낭자했다
단풍은 절정,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쟁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