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 정임옥
여름 한낮
남한산성 오른다
배꼽 위는 멀쩡한데 아래가 누렇게 죽은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가지 많아 근심 잘 날 없던 그 나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혈 받은 자리엔
개미가 들락거려 반들반들 길까지 나 있다
독야청청해 온
수령 오백 년의 소나무
여력 다해 마지막 기상 세우고 있는 걸
그 아래 누워 낮잠을 청하다 보았다
끝끝내 곁에 붙어 피를 말리던 가지들
목숨이란 그런 것인가
떠나려면 주저앉고
있으라면 가버리는
정임옥 시집"꽃에 덴 자국"[문학사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