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 문성해
아비는 원래 들판에서 왔다
밤에 와서 누웠다가 새벽이면 목발을 짚고 사라졌다
아비가 누웠던 자리는 먼지가 도로 와서 누웠고
마른 짚이 늘 한두 개 떨어져 있거나
새똥이 하얗게 굳어 있기도 했다
눈자위가 시커멓게 들어간 아비를
토담집 할아범은 폐병쟁이라 하였는데
아비를 본 사람은 할아범 말고는 하나도 없으니
아비가 더듬어오는 탱자나무 울타리나 아는 사실이다
생목이 타는 갈증으로 한밤중에 일어나 보면
시커먼 허깨비 하나 어미를 타고 너울거리고 있었다
까무룩이 넘어가는 찌르레기 소리를 내는 어미를 보고
어미 역시 들판이 데려가는 건 아닌가
숨죽인 여러 날이 지나갔다
어미는 그러고도 아비를 모르는
새벽이면 마른기침이 심해지는 자식을 둘씩이나 더 낳았다
문성해 시집"아주 친근한 소용돌이"[랜덤하우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