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韓服 1 - 金準泰
한복은 맨살의 부드러움이다
조선의 안으로부터 묻어 오는
온화溫和하고도 미끈한 빛깔.
가래침을 뱉고 싶은 거리에서
무명도포道袍를 걸치는 일은
몇십배나 더 속이 후련하다.
푸른 하늘처럼 붙는 감촉이란
입술에 물린 젖가슴보다 푸짐하다.
요즘은 섹스에 달관達觀한 노인老人들만이
의젓하게 입고 다닌다고 하지만
혁명革命을 겪어본 사람은
한번쯤은 한복을 입어 보라.
정신을 휘감고 흔들리는 곡선曲線은
잔물결 많은 이조시대李朝時代
추사秋史 김정희의 붓끝이라 해도
어찌 시늉이나 하겠느냐.
넉넉한 바짓말을 추스를 때
등줄기가 환해지는 고적감은
자유自由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지금은 정서情緖의 절정에 매달린
단 한벌의 한복을 입기 위하여
시골로 장가들려고 애를 쓰고
밤중에도 장롱의 열쇠를 비틀며
할아버지의 한복을 몰래 빼내려는
혁명革命적인 장난은 너무나 서글프다
한복을 훔쳐서라도 입으려는
내 알몸의 소원은 암담할 뿐이다.
늘 남의 옷을 벗고 입었기에
암담할 뿐이다.
김준태 시집'참깨를 털면서"[창작과 비평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