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늘 한 잎이 - 강연호
후박나무 그늘 아래
너는 나뭇잎 지는 자세로 누워 있다
바람도 없는데 지금 그늘 한 잎이
처음 옷 벗기우는 여자처럼
파르르 입술 깨물며 네 곁에 내려와 눕는다
둥글게 말려 떨고 있는 그늘을
너는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그늘 속은 추억처럼 어둡고 고요하다
쏜살같이 우주를 날아온 햇빛도
여기서는 제 속도를 못 이겨
고개 절래절래 흔들며 튕겨나갈 분이다
잎 지는 후박나무 그늘 아래
너는 나뭇잎 두이구는 자세로 돌아눕는다
추억 떨군 자리가 쑤시는지
후박나무는 시퍼렇게 멍든 팔을 잠시 내보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대신 네가 운다
지금 그늘 한 잎이
강연호 시집"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문학세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