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아버지 - 엄재국
아버지는 신용카드를 한 번도 쓰시질 않았다
자동차 면허증도 없고 주민증도 없었다
네모난 방, 네모난 이불, 네모난 밥상, 화투장을 만지다
지새운 아버지, 신용 있던 밤은 달도 네모났었지
사각의 병원 사각의 침대에서 각진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
다리 굽은 아버지
관 속에 들어가시려 하질 않았다
이젠 들어가셔야지요
내가 억지로 다릴 펴고 관 속에 밀어넣은 아버지
사각의 구덩일 파놓고
아버지
카드 한 번 써보시죠. 오냐 그래
온몸으로 긁는 카드
내 몸속에 스윽 밀어넣는 아버지
캄캄하게 감듯 흙 덮이고, 잔고 없....., 거래정......, 마그네틱 선 따라 내리는 아버지
아이고 아이고,
삐... 삐... 삐... ,
어디선가 고장난 카드 단말기 소리
2006년 월간 "현대문학 9월호"[현대문학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