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나니 - 권석창
창밖에 던져진 그대 눈길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이나 강아지도
하얀 눈이 내려서 지워버리고
속눈썹에 피어난 슬픔이나 환상도
어둠이 내려서 지워버리고
다만 한 장의 흰 종이와
한줌의 마른 어둠이
그대와 함께하여 이 한밤
적막한 벙어리 멍텅구리의
눈만 허옇게 오나니
모든 죽은 자의 침묵 위에도
모든 가난한 자의 빈 손 위에도
허옇게 허옇게 내려
말없음엔 말없음을 더하고
가난함엔 가난함을 더하여
그대 밑도 끝도 없는 삶의
빈 푸대자루 속에
쌓여도 쌓여도 허물어지는
밑도 끝도 없는 흰 눈만이
오나니
오나니
오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