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윤지영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받은 적 없는 편지를 씁니다.
숲으로 난 길을 걷다가, 창가에 앉아 뜨락을 내다보다가
구름이나 태양이나 마른 풀의 언어로 편지를 씁니다.
나는 여름의 한 가운데 앉아 있어요. 빨간 해가 이웃집 지붕 위를
통통거리며 뛰어다녀요. 굴참나무 숲에 바람이 부네요. 아주 짓궂
네요. 잘래잘래 도리질치는 잎사귀에 기어이 잎을 맞추고 냅다 도
망질쳐요. 숲을 빠져 나오는 바람이 희부죽이 웃는 건 그 때문일
까요.
해가 내 안으로 지고 있어요. 당신은 해지기 전 전나무 숲의 실루
엣을 따라 느릿느릿 번져가는 오렌지빛 색소폰 소리를 들어본 적
이 있나요. 모기향 알싸한 연기에 북두칠성이 재채기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집 뒤로 난 오솔길을 걸을 때 모든 게 당신
의 미소와 오버랩되는 이유를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나는 매일 편지를 씁니다.
당신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편지를 씁니다.
오렌지 빛 색소폰의 언어로, 일렁이는 굴참나무 그늘의 언어로,
가끔은 지나가는 흰구름의 언어로, 희부죽인 웃는 바람의 언어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내 편지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것은
그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