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들의 후예 - 박주택
저 유적들, 빗방울들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라
작고도 가냘프게 살아 있음을 증거하며
땅을 한 번씩 흔들다 사라진다, 그러나 그 물은
다시 나무들의 뿌리에 가닿지 못하고 혀의 틈새로
사라진다 이것이 더 나은 삶을 꿈꾸었던 것이라면
나무에서 뽑혀 나온 사내만이 떠가는
흐린 발자국으로 떠가는 것이라면
자신의 처지에 저항하지 못한 자들도
살아 있을 때의 순간들을 후회해야 하리라
용감한 바퀴들이 피를 토하며 굴러간다
피의 혈관에 스며드는 물방울들을 튀기며
제각기 모퉁이를 돌아간다, 적나라하게 혹은
더 깊은 소리를 내며 날개를 튀기며 잿빛 구름이
만들어 내는 길속으로 부풀어 오른다
여기 오래 땅에 닿지 않는 발들이 모여 있다
그 발들은 푸르거나 붉어서 닿지 않음을
항거하고 수많은 차이가 운명을
앞지르듯이, 둥글고 가는 물방울들만이 자욱한
날짜 앞에 제 얼굴의 분장을 지운다
헛배 불러오는 오후, 또는 좁은 거리
하늘이 텅 빈 몸을 드러내며 자궁을 드러낸
여인처럼 回姙의 세월에 몸을 구겨 넣을 동안
비는 천천히 구르고 흔들리며 사라지는
거리의 간판들도 몸도 없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향해 천천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