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로부터 온 편지 - 연왕모
나무와 땅과 바람 그리고 하늘이 왜 이리 가깝게 보이는지요
거기 묻어오는 그대의 모습들이 가슴으로 들어와
온 몸을 적셔놓는데 왜 나는 자꾸만 갈증을 느끼는 걸까요
오직 주인의 채찍에만 길들여진
순진하기만한 당나귀의 눈을 아시는지요
어딜 가다가도 문득 제자리에 서서 그대만을 생각하는
바보처럼 멍한 모습의 당나귀가
스스로는 얼마나 큰 기쁨에 겨워하는지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 또 하루 묵묵히 걸어간다는 걸
아시겠는지요
짐수레도 없이 그저 혼자 길 위에 버려진 당나귀를
생각해 보셨는지요
그냥 길 위에서 풀을 뜯으며, 가고 싶은 대로 가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게
그에겐 오히려 허전함보다 못하다는 걸 느낄 수 있겠는지요
그러다 문득 주인을 만나면
어떤 말 대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오직 맑은 눈빛으로만 바라보는 당나귀를
그려보실 수 있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