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 김영남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 멜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 잠시 되돌아보는 고구마순,
벽을 기어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꺾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
그 구불구불한 줄기를 들치면
대나무 뿌리같은 손이 있고
그 손 속에
들녘으로 나가는 어머니
호미자루가 쥐어져 있다.
꺾인 자리를 지우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새순 속에는 또
얘야! 손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뒤져
네게 올려주마 하시던
고무신발 같은 말씀이 달리고 있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묵은 순 속에는
딱딱한 매듭으로 남거나 삭정이로 부러지는
줄기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게 숨어있다
땅을 기어가는 것들
절벽을 기어오르는 줄기 들에게는
어둔 싹들을 이 세상으로 업어낸
아름다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