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닫고 너를 닫고 고통도 닫고 고통 위에 짙푸른 억새들도 닫고 해질녘 미친 듯한 시장기도 닫고 일생 문밖에서 서성거리던 발소리도 닫고 돌아서자, 돌아서 뚜벅 저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가자 사방 치맛자락 붙드는 빈집들 돌아보지 말자 저 초경 같은 이야기들도 돌아보지 말자 생은 천천히 마시는 술 같은 것 돌아볼수록 발목 잡히는 것
너와 나를 닫고 나니 문득 보인다 고통이 얼마나 짙푸른 두엄이었는지 그 꼭대기 사철 푸른 억새는 얼마나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는지 절망의 자물쇠는 얼마나 완강한지 시장기에 지친 것들이 왜 자꾸 늪 쪽으로 걸어가는지
이제 돌아서자 닫힌 문들을 업고 아우성치는 골목을 돌아 미친 듯 붉은 시장기를 지나 가자 캄캄한 골목 끝 깎아지른 벼랑으로 흑장미 같은 어둠들이 툭툭 피어오르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바위처럼 뚜렷한 버려진 시들이 움찔움찔 피어나는 버섯 같은 꿈들이 튼튼한 지붕을 이루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