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빗소리가 내 귀를 파먹는 밤이네. 이런 밤엔 머리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 꽂아보고 싶어. 온몸에 미친년 치맛자락 같은 실밥 두르고 나도 한번쯤 흐드러지고 싶어. 꽉 찬 지푸라기 업고, 더욱 꽉 찬 결핍의 사타구니로 앙앙 울어대는 베개를 낳고 싶어. 누이야, 오랜 건조주의보는 빗살의 완곡한 철창 안에 갇혀 난처한 얼굴이네. 빗물이 안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어. 활활 타올라 보지도 못한 채 가로수들은 잎과 가지를 뒤섞으며 둥글게 일그러지고 있어. 매직아이처럼 어느 순간 떠올라 둥둥 흘러가는 산책이여, 조난 당한 우중의 외도여. 눈 어두운 길 위의 애무는 배꼽 같은 가등 밑에서 아득한 피안의 표정으로 서로를 적셨지만,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는 미친 여자 라는 상징은 아직 유효한가. 머리엔 처녀치마꽃, 안테나 높이 올리고 빗소리가 파먹은 상처의 둥근 귓바퀴 따라 걸어보고 싶어. 도저한 빗물 받아먹고 돌멩이 맞아 죽은 아들 하나 잉태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