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에서 - 김문희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한시절 살아온 말없던 삶이
빛바랜 세월을 털고
이 가을, 나무는 정직한 맨몸으로
찬바람 속에 선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것이던가
추수의 마차들이 숲을 지날 때
지난 여름의 셈은 끝나고
돌아오라, 고독한 자유여
나무는 저마다 혼자서
가을 햇살에 몸을 씻노니
바람이 올 때마다 아픈 손을 흔들어도
가을 하늘 높이에서 아득한
그리운 이름
슬픔으로 수액을 말리고
메마른 육체를 쓰다듬어
겨울 문턱에 서서
나무는
그 싱싱한 내일을 위하여
이 가을, 말 없이 옷을 벗는다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아픈 숨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