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속의 방 - 장석남
나무는 너의 방
내가 놀러가고 싶은 너의 방
너를 안고 싶어한 너의 방
나무는 너의 방
가자고 하지 않아도 가고 싶은 방
나무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문이 있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들어가는 방
그러고도 다시 들어가 바라보는 문
너의 방
나무는 너의 방
너는 방 속에 있는가
너는 많은 잎 속에 있는가
지금은 없는 잎,
이마에 해와 달이 지나가고 있는가
나무는 너의 방
나는 나무에 매어 있는 그늘
나무 그늘
웃음 뒤의 웃음
제 몸을 진저리치다가 다시 서는 나무
꿈을 잠시 떨어뜨려 놓고 있는 나무
울음 뒤의 울음
나무의 낮은 데를 가보고 싶어
소 발자국 같은 걸 그늘 속에 그려서 문으로 삼을까
너에게 가는 문으로 삼아야 할까
먼데를 보는 소의 표정으로
그래야 들어갈 수 있을까
너에게 바치는 춤을 추어야 할까
나무는 너의 방
너를 안고 싶은 방
해마다 한 칸씩 더 나를 가두고
해마다 한 칸씩 더 나를 밀어내는
아득한 방
나란히 누워 있고 싶은 방
이렇게 맑은 날은
나 아주 조금만 존재해야 하리
존재하려면 아주 조금만 조금만
존재해야 하리
차라리
너의 속이 되어서 너의 속이 되어서
아주 속이 되어서 없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