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 피천득(1910~ )
억압의 울분을 풀 길이 없거든
드높은 창공을 바라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티끌 같은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실연을 하였거든
통계학을 공부하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시계의 초침같이 움직거리는
또렷한 또렷한 생명을
살기에 싫증이 나거든
남대문시장을 가보라던 그대여
나는 보았다
사흘 동안 품겼던 달걀 속에서
지구의 윤회와 같이 확실한
생(生)의 생(生)의 약동을!
푸른 하늘이나 통계학, 남대문시장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금아는 달걀 속에서 움트는 생의 약동을 느끼라고 권유한다.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을 때, 사랑을 놓쳤을 때, 도무지 삶이 무의미할 때 달걀을 품어 보라는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것이 삶의 역설이다. 자기 앞의 생이 또렷하게 보이던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 것인가.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