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병원 안에서만 지내고 바깥을 구경하지 못했다. 가족도 없어 문병도 없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과 친해져도 봤지만 먼저 퇴원해버리니 더 이상 병실 안에서도 사람 사귀는 일이 귀찮아졌다. 그러다 보니 마치 죄수가 풀려날 만을 기다리듯 퇴원할 날만 기다리며 퇴원 후,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게 됐는데 그 첫 번째가 성당을 내 발로 걸어가는 일이었다. 용기를 내봤지만, 몸이 싫다는데 어쩌나. 마트에서 집까지 배달도 해주니 앉아서 장보기 일쑤였고 귀찮아 휠체어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으름이 붙었다. 그러다 자원봉사 제안이 들어왔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마냥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 미안타. 키가 188cm에 몸무게가 90kg나 나가니 돕는 사람도 힘들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래도 해군 중사 출신인데 훈련받던 정신력이면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책들을 조금 접고 걷기 시작해 목발에서 지팡이로 지팡이에서 두 발로 발전했다.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아이스크림 사는 일에 성공하자, 이 중생은 기고만장해져 드넓은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시작했고, 지금은 조금 거리가 되는 성당까지 오고 갈 수 있다.
아싸~!
얼마 만에 가보는 성당인가! 마치 42.195km를 뛰고 온 마라톤 선수처럼 헉헉대면서도 감동했다. 일반인이야 이런 것쯤이야 하겠지만 나로서는 거대한 도전이었다. 아파트 입구 편의점까지만 갔어도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성당까지 오게 되니 마치 백두산 정상에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구역장과 다른 분들도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다고 못 찾아가 미안타고들 한다. 하기야 이게 몇 년 만이던가. 나의 무호흡을 겪었던 장애인 활동가도 불안불안 총총 따라왔지만 난 도움받지 않고 가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 오롯이 가고 싶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며 고해성사를 마치고 미사까지 드리고 나오니 몸이 더 가벼워져 뛸 것만 같았고 세상이 달리 보였다. 늘 보던 하늘도, 둘레길보다 멋진 성당 가는 숲길도 예뻤다. 하늘에 있는 아내도 얼마나 기쁘겠나. 하필 주말이 성당 생일인 ‘본당의 날’이라 주말엔 같이 어울려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즐겁게 놀며 추억 속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추수가 끝나 논들은 대머리가 되어있고 밭들엔 곧 거두어들일 배추들이 보였다. 추운데도 아직 길가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살랑거렸다. 나무들 사이사이 새들이 노래하는 가로수길을 지나 집에 오니 편안 했다. 커피를 내리며 음악을 켜고 앉으니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이젠 책들과 노는 것보다는 밖으로 좀 나가보려 한다. 걷고 사색하며 무한히 아름다운 단어들과 문장을 떠올리며 살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새들과 대화하며 나는 행복한가를 묻고 살자. 시간표를 집어 던지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자. 자연스러운 일들을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자. 품었던 것도 풀어 헤쳐 짐을 덜어 보고 새로움이 어색해도 웃자. 그렇게 성자처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