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음지에서 물만 먹고 자란다. 거적대기 하나를 이불 삼아 맨살을 부비며 오손도손 서민으로 살아간다. 머리가 모두 샛노란 것은 햇빛을 간절히 그리워 했기 때문이다. 저마다 가슴 안에 샛노란 해를 하나씩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해파리
바다의 도신선사다. 떠도는 일에도 걸리지 않고 머무르는 일에도 걸리지 않는다. 일엽편주지만 무심지경이다. 파도가 치면 파도에 흔들리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린다. 마음을 비워 온 육신이 투명하고 천지를 비워 온 바다가 투명하다.
물보라
포세이돈의 백마. 바다의 수염. 비탄의 분말
이슬
새벽에 내린다. 만물이 깊이 잠든 안식의 새벽에 소리 없이 내려와 꿈을 적신다. 신의 서늘한 입김이다. 생명의 속삭임이다. 사물들의 표면에 닿아 물방울이 되고 물방울은 땅에 스미어 옹달샘을 만든다. 옹달샘은 그 흐름을 다하여 바다에 다다른다. 이슬은 바다의 투명한 미립자다.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앵두
유년 시절 누나의 가시 찔린 손 끝에 맺혀 있던 선홍빛 피 한방울.
쓰레기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가공물의 말로. 또는 지구가 바라보는 인간.
텔레비전
수다스러운 가전제품. 시간과 채널만 조정해 놓으면 혼자서도 쉬지 않고 수다를 늘어 놓는다. 언론매체의 중심적인 위치에 놓여 있으므로 독재국가에서는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우민화 정책의 선봉이 되기도 한다. 온 국민의 눈이며 온 국민의 입이지만 꼭두각시가 되면 온 국민을 벙어리로 만들거나 장님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도취에 빠져서 시청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프로그램으로 아까운 전력을 낭비하게도 하고 때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프로그램으로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생각케 만들어 주기도 한다. 외래문화의 쓰레기를 유입하는 창구가 되기도 하고 전통문화의 진수를 찾아내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광범위한 정보도 내장되어 있고 다양한 상품광고도 내장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텔레비젼에 조금씩은 중독되어 있다고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이성을 잃어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난다. 텔레비젼에서 얻은 정보라면 무조건 신뢰해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텔레비젼에 붙어 있는 동안 자신의 금쪽 같은 시간이 엄청난 양으로 폐기처분 되고 있음을 허망해하는 시청자는 별로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