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보면, 방송작가라는 게 티가 날지도 모른다. 역내 간이서점 앞에서 부지런히 인쇄물을 훑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잡지 표지를 훑다가 참신한 제목이 나오면 얼른 휴대전화 메모장에 입력한다. 큰 제목들은 독자들을 끄는 중요한 문장이며, 그 매체 편집장들이 머리 빠져가며 지은 것이다. 제목만 메모해 두어도 재미있는 문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면도할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아이디어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광고가 나올 때 가장 작렬하게 솟구치는 것 같다. 광고는 15초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제품을 팔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 카피도 부지런히 메모한다. 세태가 녹아 있기 때문에 세상을 읽는 데에는 카피가 아주 충성스러운 바로미터가 돼 준다.
방송작가가 된 뒤, 내 인생관은 ‘적자생존’이 되었다. 적어야 사는 ‘적자생존’ 말이다. 말이 아주 빠른 진행자와 일하는 나는, 매일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야 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다양한 소재가 필요하다. 커피를 마시다 옆자리에서 들리는 얘기에 귀가 솔깃할 때가 있고, 드라마나 쇼를 보다가, 길을 걷다가 어디서든 보고 느끼고 듣는 것을 메모해 두고, 거기에서 멘트 소재를 얻어낸다.
최근에는 온라인에서의 만남도 소중해지고 있다. 나는 가까운 이들과의 카페 다섯 개, 잘 모르는 이들과의 카페 열두 개, 그리고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10대부터 5, 6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주고받는 세상사를 통해서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꿈꾸고 고뇌하며 즐거워하는지도 감 잡고 있다.
그러나 내가 메모나 만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다. 다른 사람과 만나는 시간을 ‘광장’이라 한다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은 ‘밀실’인 셈이다. ‘무엇을 쓸까, 어떻게 쓸까.’ 혼자 사고하는 시간 없이는 그저 그런, 내 생각은 실종된, 남과 비슷한 원고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방송작가가 되려면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고(思考)뭉치’가 돼야 한다.
매일 새로운 카피처럼 되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적자생존’에 앞서서 ‘사고뭉치’의 시간을 갖는다. 방송이 끝나는 시간도 the end가 아니라 ‘the and’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