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겸손한 자세를 잃고 대충 넘어 가려고 하다 민망함을 당하고 나면 한동안 글쓰는 일이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그것이 슬럼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먹기 거북한 음식처럼 읽기 부담스러운 시. 너무 성 급하게 익혀내어 얼른 보아도 덜 된 음식이란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한 글, 쫓 기듯 만든 음식처럼 성의조차 없는 글.... 요즈음 나는 세월의 뜸이 덜 된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려워진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해 공연히 불안해하며 글의 깊이를 잃어 가는 내 자신이 된장 항아리를 뛰쳐나온 몇 개의 초조한 콩은 아닌가 되돌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