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ㄹ’은 꽤 까다로운 성격을 지닌 소리이다. 이 소리는 그 앞에 ‘ㄹ’이 아닌 다른 자음이 오지 못한다. 그래서 ‘신라’는 앞의 ‘ㄴ’ 소리가 ‘ㄹ’로 바뀌어 [실라]로 발음된다. 앞의 자음을 바꿀 수 없으면 자기가 변해 버린다. 예를 들어 ‘종로’는 ‘ㅇ’을 바꾸는 대신 ‘ㄹ’ 자신이 ‘ㄴ’으로 바뀌어 [종노]로 발음된다.
그나마 ‘ㄹ’ 뒤에는 ‘불고기, 놀다, 꿀밤’처럼 다른 자음이 자유롭게 올 수 있는데, ‘ㄴ’ 만큼은 ‘ㄹ’ 뒤에도 올 수 없다. 즉 ‘ㄹ’과 ‘ㄴ’은 특히 어울리지 못하는 짝이다. 그래서 ‘신라, 천리, 난로’ 등에서 [ㄴㄹ]은 [ㄹㄹ] 소리로 바뀌고, ‘칼날, 달나라’ 등에서 [ㄹㄴ]도 [ㄹㄹ]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말의 발음 규칙이 외래어에서 흔들리고 있다. 예들 들어 ‘다운로드’는 우리말 발음 규칙에 따르면 [다울로드]이거나 [다운노드]가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다운로드]로 발음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ㄴㄹ] 발음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도 과거에는 [올라인] 아니면 [온나인]이었으나, 지금은 [온라인]의 발음이 매우 많아졌다. 연예인 ‘헨리’도 방송에서 흔히 [헨리]로 발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는 [ㄹㄴ] 발음도 늘어나 ‘엘니뇨’도 [엘리뇨]가 아닌 [엘니뇨]로 발음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이는 영어의 영향이다. 영어 원음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더 복잡해져 버린 이들 발음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는데, 아직 외래어의 표준 발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서둘러서 [다울로드]인지, [다운노드]인지, 아니면 [다운로드]인지 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