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 하염없이 느리다. 사이버대학에 올린 내 강의 동영상을 보다가 곧장 게시판에 항복 문서를 올렸다. ‘가만히 듣다 보면 어느새 졸음이 밀려옵디다. 재생 속도를 1.25배로 하니, 졸음이 조금 늦게 오시더군요.’
‘보통’ 속도로 보는 건 손해다. 1.25배속으로 봐도 ‘줄거리 파악’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 출연자의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신경질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바쁜 시간을 알뜰하게 아껴 쓴다는 실용주의자의 자부심을 심어준다.
여기에 맛을 들이면서 영상예술에 대한 감각이 변질되더군.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있으며,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착각 말이다. 속도를 높일수록 우리 귀는 내용(메시지)만을 쫓는다. 조각난 작품을 읽고 재빨리 주제를 파악하는 걸로 국어 실력을 가늠하는 것처럼, 줄거리만 간추리면 영상을 다 본 것. 목소리나 말의 속도, 음색 같은 건 선물을 싼 포장지일 뿐.
우리는 줄거리, 핵심 내용, 주제를 뽑기 위해 영상을 보는 게 아니다. 작품 자체가 갖는 고유한 물질성, 질감, 현장성 같은 것에 녹아 들려고 본다. 우리가 예술에 다가가는 이유는 그 속에 낱낱의 고유한 삶의 형식들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느리고 어눌하고,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을 간섭하고 뒤엉키는 그 머뭇거림의 형식 자체에 마음이 격동되기를 바라며. 형식에 대한 무시는 예술을 메마르게 한다. 말은 단어와 단어 사이에 있는 허공과도 같은 빈틈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속도를 늘릴수록 우리는 말해지지 않은 것, 표현되지 않은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에 더 근접해 있다는 걸 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