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이치씨(DHC) 텔레비전 출연자가 “‘조센징’은 한문을 문자화시키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 지금의 한글이 되었다”고 하자, 다들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일제는 조선어 말살 정책을 썼다고 배웠으니 황당해하는 것도 이해된다. 저 말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언어 버전이다.
일제는 일본어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쳤다. 총독부 주도로 철자법도 제정했고 교과서와 사전도 만들어 한글과 조선어 보급률을 높였다. 그러니 고맙다고? 전혀! 총 대신 칼을 든 강도일 뿐. 애당초부터 조선어를 폐지하고 일본어를 상용어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일본어 보급률이 1919년엔 겨우 2.0%, 1930년엔 6.8%였다. 어쩔 수 없이 조선말을 가르친 거다. 일본어 교육을 전면화하되 조선어를 이등국민어로 만들 속셈이었다. 새로 놓은 철길이 수탈의 통로였듯이, 그들이 허용했던 조선어도 순치의 도구였다.
그들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조선 전역을 총동원 체제로 바꾸자마자, 조선어로 하는 말글살이를 억압한다.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강등시키고 실제론 금지시켰다. 조선어 신문·잡지도 폐간시킨다. 전쟁터와 공장에 끌고 갈 조선인이 일본말을 알아들어야 쉽게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제에 의한 조선어 교육은 식민지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된 떡밥일 뿐이었다. 일본어를 통한 순치든 조선어를 통한 순치든, 아스팔트길이든 꽃길이든 일제가 조선 민중을 태우고 도착한 곳에는 언제나 ‘수탈’이라는 팻말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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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중심에
나는 야구에서 좌익수가 누군지 헷갈린다. 관중석 기준으로 왼쪽인지 포수 기준으로 왼쪽인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지금, 나중’처럼 장소나 시간 표현은 말하는 이 중심으로 정해진다. 포수 쪽에서 외야를 보며 중계를 하니 포수 기준으로 왼쪽이 좌익수인 게 맞나 보다.
그런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중심에 놓는 경우가 있다. 병사와 마주 선 장교는 병사들을 자신의 왼쪽 방향으로 가게 하려면 ‘우향우’라고 해야 한다. 내 기준대로 ‘좌향좌’라고 하면 병사들은 오른쪽으로 가게 된다.
어느 정도 규칙으로 굳은 경우도 있다. 손윗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어떻게 하는지 떠올려보라. 아빠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라면을 먹을 테니, 너는 참아라.”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할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 주렴.” 아줌마가 길 잃은 꼬마에게 “아줌마가 집에 데려다줄게.” 뭐가 이상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영어로는 모두 1인칭 대명사 ‘나’(I)를 쓴다. 상대와 어떤 관계인지 상관없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라는 건조하고 추상적인 역할만 표시한다. 반면, 한국어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확인하되, 타인을 중심으로 자신을 호명한다.
어린 사람도 상대방을 ‘너/당신’(you)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춘기더라도 아빠한테 “당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한다면, 그날은 좀 늦게 자게 될 것이다(“아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하면 반 그릇을 덜어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