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을 통해 삶을 유지하고, 여기서 생긴 여유와 축적을 바탕으로 문화를 일군다. 이렇게 삶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아 활동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노동’이라고 한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 재화를 생산하며, 소비를 통해 휴식을 하면서 힘을 다시 채워 넣는다.
이 노동을, 주어진 일자리에서 일정한 조건과 계약에 따라 품을 팔아 일하면 보통 ‘근로’라고 일컫는다. 대개 ‘근로소득세’를 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농민과 주부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도무지 ‘근로’의 범주에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근로라는 말은 일정한 고용 조건을 전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5월1일은 국제적으로 ‘노동절’(혹은 메이데이)이다. 착취당하기 쉽고, 배움의 기회를 놓치기 쉬우며, 경제 위기에 쉽게 상처받고, 가족의 안정이 쉽게 흔들리는 노동자 집단이 국제적으로 서로 연대하며 함께 단결을 다지는 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을 굳이 ‘근로자의 날’이라 달리 부른다. 한때는 미국처럼 날짜도 달리했다. 노동자들의 유대를 못마땅해하던 지난날의 폐습이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개념을 말할 때는 툭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을 내세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노동절’이라는 단어야말로 가장 널리 알려진 국제 표준어에 가깝다. 고용계약서가 있건 없건, 근로소득세를 내건 말건,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 우리가 매일매일 공들이는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되돌아보자. 세상의 온갖 가치와 의미는 누군가의 노동에서 비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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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와 신조어
상품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소비를 더 자극하고 또 나아가 초과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으로 아마도 ‘일회용 상품’의 개발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었을 것이다. 반창고에서 시작하여 주사기, 면도기, 기저귀, 칫솔 등 갖가지 상품을 한번만 쓰고 버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찍히기도 한다.
잘 쓰이던 어휘 중에도 점점 사람들 입에 잘 안 오르는 말들이 있다. 각종 신조어와 유행어들이다. 일부는 꽤 긴 수명을 누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추억의 여운만 남기고 서서히 사라져간다. 초창기 인터넷 사용자들이 사용했던 ‘아햏햏’이라는 표현은 지금은 무슨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또 반려견을 가리키던 ‘강쥐’라는 말은 요즘은 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나 근근이 쓰인다.
비록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회 분위기의 변화로 사용하기에 거북하게 느껴지는 말도 있다. 한때 자주 쓰이던 ‘얼짱, 몸짱’이나 ‘얼꽝’도 양성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쓰기 머쓱해진 추억의 신조어들이다. 좀 ‘꿀꿀한’ 기분을 드러내던 ‘뷁’도 이젠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우리는 이런 수명 짧은 말을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도 우리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구석구석을 지켜주는 의미 있는 기능을 한다. 웅장한 영화에 등장하는 단역 배우도 그 나름 중요한 배역이 있듯이 신조어나 유행어도 언어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일회용 상품은 환경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일회용 어휘는 뻔하고 뻔한 언어 세계를 생동하는 생태계로 만드는 자원의 하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