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몹시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바로 남과 북의 대화 실무자들이다. 특히 그들의 언어는 품격도 갖추고 민족의 미래도 살피는 사려 깊은 언어였으면 한다. 또한 그들의 언어를 보도하는 매체들 역시 이들의 대화를 선정적으로만 다루지 말고 격조 있게 보도했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북의 대화 실무자가 역정을 내며 ‘불바다’라는 험한 말을 꺼낸 것을 그리 요란하게 보도했어야 하나 하는 뒤늦은 아쉬움도 든다. 또 우리 외교관들이 국외에서 북측 외교관에게 천안함 사건을 거론하면서 “남쪽에서 보면 사과 같기도 하고 북측의 입장에서는 사과가 아닌 정도의 표현을 해달라”고 했다고 양측에서 요란하게 보도했다. 더듬어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반신반의하면서 격분하긴 했지만 과연 그렇게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이 옳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나의 상상이지만 당시에 그런 보도들을 삼가거나 순화했더라면 지금의 남과 북의 관계는 더욱더 진척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회한을 가지고 보니 최근에 물의를 빚은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던 한마디가 또 가슴을 찌른다. 대화 실무자들도 지루한 공방을 벌이다 보면 역정도 나고 울컥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속속들이 보도하는 것이 국민의 진정한 알 권리 충족일까?
남과 북은 전쟁으로 엄청난 희생자가 생겼고, 복잡한 국제관계가 끝끝내 우리의 행보를 좌절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말 한마디, 기침 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그런 뒷이야기들을 우리는 ‘뒷담화’라고도 한다. 그리 생산적이 못 되는 이야기들이다. 숨이 멎을 듯한 긴장과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자잘한 상처를 내기 쉬운 뒷담화보다는 일을 성취한 후에 느긋하게 나누는 후일담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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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살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유학생 수가 많이 늘었다. 호사다마라고 이들의 수가 급하게 늘면서 불법으로 머무는 외국인의 수도 함께 늘어났다. 당연히 법도 잘 지키고 문화 교류도 사그라들지 않도록 묘수를 찾아야겠다. 사법 당국이 칼을 빼기에 앞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조절되고 정상화될 수 있는 길이면 더 좋겠다.
한국어가 과거보다 인기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수준에서 돌아본다면 그 성과는 아직 여린 떡잎에 지나지 않는다. 한류의 영향이라는 것이 오래전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영어를 조금씩 깨치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상황과 비슷한 정도이다. 한국어 학습자의 대부분은 아직 초급 단계이지 중급 수준을 넘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한국어 학습을 장려하려고 불법체류자들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반대로 불법체류를 단속하기 위해 아예 입국 단계부터 단호한 단속을 시행하는 것도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공생하는 두길보기 정책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외국인 학생을 불법으로 유치해 사익을 꾀하는 ‘시장 요인’은 무엇일까? 비합법적 인력 공급 체계, 그리고 각종 어학연수기관들의 무분별한 학생 유치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시장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모처럼 뻗어 나가는 문화 교류의 추동력도 초반에 꺾이지 않게 해야겠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온 역사는 대략 60년가량 되어 간다. 그 대부분 기간 동안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는 상황에서 ‘저비용의 민간 외교’ 구실을 해왔던 분야이기도 하다. 약 20년 전 당시 ‘국민의 정부’의 뉴밀레니엄 사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었는데 이제 와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법도 살리고 문화도 살리는 ‘탄력적인 행정 조치’가 필요하다. +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