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로’(わいろ)는 뇌물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국립국어원은 ‘와이로’를 버리고 다듬은 말인 ‘뇌물’만 쓰도록 했다.(1997년 국어순화용어자료집) 사전 속 ‘회뢰’(賄賂, 뇌물을 주고받음. 또는 그 뇌물)는 우리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표현이다. 중년 이후에게 ‘와이로’는 ‘옛 기억’의 흔적으로 명멸하지만 젊은 세대에겐 어휘집에 없는 낯선 말이다. 새삼 ‘와이로’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역사와 고전의 탈을 쓰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타고 마구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백운거사를 인용하고, 누구는 중국 고사에 기대어 ‘와이로의 역사와 전통’을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백로를 심판 삼아 노래 대결을 제안했다. 꾀꼬리는 열심히 연습했지만 까마귀는 엉뚱한 짓을 했다. 연습 대신 개구리를 잡아 백로에게 준 것이다. 대결 결과는 까마귀의 승리. 개구리를 받아먹은 심판이 까마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빗대어 이규보가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이라 집에 붙여 놓았다. ‘나는 여기 있지만 개구리가 없어 인생 한이 맺히누나’라는 한탄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개구리 와’(蛙)+‘이로울 리’(利)+‘백로 로’(鷺)인 ‘와이로’다. ‘와이로’는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 고사에서 온 것이다.”
온라인의 ‘퍼나르기’로 ‘확대재생산’되는 얘기의 하나다. ‘와’에 ‘이로’(利鷺) 또는 ‘이’(餌, 미끼)와 ‘료’(料)를 붙인 변형도 눈에 띈다. 그러나 ‘蛙利鷺’는 ‘와리로’라고 읽는 게 맞고, ‘와이료’가 ‘-로’로 변하는 음운현상의 근거는 없다. “늙은 호랑이가 개구리를 받아먹고 꾀꼬리를 일등으로 꼽은 우화”를 1952년 한 일간지에 소개한 수필가 조경희는 “산중의 늙은 호랑이가 되어서 어찌 흑백을 가릴 수 있으며 양심과 정의의 길을 찾을 수 있는가”라고 했을 뿐 ‘와이로’를 갖다 붙이지 않았다.
……………………………………………………………………………………………………………… 5678님
“강재형 씨,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다방에서 드물게 듣던 ‘디제이 멘트’이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강재형 씨’라 적힌 안내판을 들고 느릿하게 걸어가는 호텔 커피숍 직원을 본 적도 있다.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다. 한때 ‘아무개를 찾는 전화’는 찻집과 음식점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비슷한 때, 각양각색으로 접힌 쪽지가 올망졸망 붙어 있던 약속 장소의 ‘메모판’을 추억하는 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공중 장소에서 대놓고 이름 부르고, 자신들만의 정보를 ‘공개 메모판’에 버젓이 남기던 때가 있었다. 개인정보에 무심했던 때, 돌이켜보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다.
두루누리(유비쿼터스) 시대가 되면서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달라졌다. 개인정보 가짓수가 늘면서 ‘나’도 여럿으로 드러난다. ‘주민등록번호’와 ‘학번’, ‘사번’은 물론이고 ‘차량번호’가 ‘나’일 때도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아이디’와 ‘닉네임’으로 통하고, ‘휴대폰 번호’가 ‘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1234님의 사연입니다”, “5678님의 신청곡”처럼 전화번호로 청취자를 소개하게 된 지도 제법 되었다.
'청취자 이름 대신 휴대폰 번호를 부르는 현상’을 다룬 기사를 보았다. 댓글 “‘이동전화 뒷번호 5678을 쓰는 분’으로 호칭하는 것이 좋다”에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갈렸다. ‘(뒷자리)5678번 쓰시는 분’처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일리 있는 얘기다. “정확한 소개는 ‘뒷자리 5678번 쓰시는 분 중의 하나’이다. 번호 같은 사람이 여럿이기 때문”이라며 “‘시시콜콜하게 다 따져 밝혀야 한다’는 것은 오버”라고 꼬집는 의견도 있다. 라디오 방송 현장의 ‘대세’는 ‘1234님’, ‘5678님’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동전화) (뒷번호) (쓰시는) 1234님’은 괄호 안의 정보를 생략한 것으로 청취자와 ‘합의’되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