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밤새 / 밤새워
사내는 어스름한 새벽에 잠에서 깼다. 길가 전봇대 밑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으스스 한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무슨 일 있나? 얼굴이 왜 그래?”
“홍대 뒷골목에서 친구와 함께 밤새 술을 마셨어. 택시 탄 뒤론 기억이 없네.”
“밤새 마셨다고? 아니면 밤새워 먹었다고?”
“왜? 무슨 차이가 있는데?”
“‘밤새’는 ‘밤사이’의 준말이야. ‘밤새’ 술을 마셨다고 하면 초저녁부터 몇 시까지인지, 밤 12시부터 새벽까지인지 알 수가 없잖아. 물론 자세히 밝히고 싶지 않아 ‘밤사이’에 그냥 술을 마셨다고 강변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구먼.”
“전봇대 밑에서 잘 정도였다면 ‘밤새워’ 마셨다고 해야 말이 되지. ‘밤새우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보내다’란 의미의 타동사니까. ‘밤새도록’ 마셨다고 해도 돼. ‘밤새다’가 ‘밤이 지나 날이 밝아 오다’라는 뜻의 자동사니까.”
“일상 대화에서 ‘밤새’를 ‘밤새도록’으로 알아듣지 ‘밤사이’로 해석할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밤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마시는 건 현실적으로 좀 어렵잖아.”
“말하고 글하곤 다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