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
최고의 권위와 최대의 어휘를 자랑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 '푸르름'은 실려 있지 않다. 물론 이는 실수가 아니고 의도적인 배제임이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푸르름'은 '푸르르-+-ㅁ'으로 분석되는데, 한국어 형용사에 '푸르르다'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규범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렇게 쉽게 폐기해 버리기엔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말은 수많은 문학작품에 쓰여 왔다. 애초에 음률을 고르기 위해 시어로서 쓰이기 시작했을 이 단어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수필 등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반인의 서정적인 글쓰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미 상당한 언어 세력을 얻은 단어라 할 수 있다.
둘째, 규범형이라고 할 수 있는 '푸름'은 '푸르름'을 대신하기 어렵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푸름'은 푸른 빛깔을 모두 가리키지만 '푸르름'은 숲이나 바다 등의 싱그러운 푸른빛만을 가리킨다. '푸르름'에는 특별한 정서적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셋째, 중세 국어에는 '프르다'와 '프를다'가 병존했는데, '푸르름'은 기원적으로 '프를-+-음'일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런 가정이 옳다면 '푸르름'이 문법적 일탈을 범했다는 혐의도 벗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