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치다, 깨우치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 않으니 읽기 싫어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창애 유한준에게 보낸 '답창애(答蒼厓)'의 일부다. 훈장이 천자문 읽기를 게을리하는 제자를 꾸짖자 그 제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을 두고 한 말이다. 제자의 눈엔 하늘이 검지 않고 푸른데, 이런 그릇된 이치는 배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연암은 창애에게 글을 쓰는 데 있어 기교나 관습에 치우쳐선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깨치다'를 써야 할 자리에 '깨우치다'를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반대의 예도 많다. "우리가 스스로의 경험으로 인생의 참된 맛을 깨우치는 것보다 삶을 더 진지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한글을 깨우친 자녀에게는 만화를 읽히지 않는 게 독서 능력을 키우는 데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등에서 '깨우치다'는 바로 쓰인 것일까? '깨치다'는 '일의 이치 따위를 깨달아 알다', '깨우치다'는 '모르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다'라는 뜻이다. 즉 '깨치다'는 스스로 모르던 것을 알게 됐을 때 쓰고, '깨우치다'는 깨닫도록 남을 가르쳐 주는 경우에 사용한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동작이나 행동을 하게 할 때는 '깨치다'의 어근에 사동 접사인 '-우-'를 붙인 '깨우치다'를 쓰면 된다.
위 문장에선 주체가 남이 아닌 나 자신이므로 '깨치는(깨닫는)' '깨친'으로 고쳐야 한다. "그는 네 살 때 수학의 원리를 깨쳤다" "그의 잘못을 깨우쳐 줬다" 등처럼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선택해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