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여서 하는 ‘말씀’이 있고 낮추어 하는 ‘말씀’이 있다. 말씀은 이처럼 두 길로 쓰인다. 흔히 ‘옳으신 말씀’이라고 한다. 이는 ‘옳게 하신 말씀’ 정도로 이해하고 넘긴다. ‘지당하신 말씀, 지엄하신 분부, 명쾌하신 지적, 적절하신 코멘트 …’들도 그렇다. ‘옳으신, 명쾌하신 …’을 넣어 말하면 ‘말씀·분부·지적 …’을 높이는 형식이 된다. 겹치기여서 듣기에 따라 낯간지럽고 거추장스럽다.
주체가 아닌 그와 관계되는 사물을 높이는 방식이 있다.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가 아닌 ‘선생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가 적절하다는 얘기다. 곧, ‘말씀’을 사람처럼 높이기는 어려우니까 ‘있다’에 ‘시’를 붙인 ‘있으시겠습니다’를 쓰는데, 이를 ‘간접높임’이라 한다.
간접이든 직접이든 그 사람과 관련된 사물까지 높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형용사에 높임어미 ‘시’를 넣어 사물을 꾸밀 때가 특히 그렇다. ‘옳은 말씀, 지엄한 분부, 명쾌한 지적 …’으로도 충분하다. 한편으로, 말을 끝맺을 때는 자연스럽다. 아름답습니다/아름다우십니다, 좋겠습니다/좋으시겠습니다, 옳습니다/옳으십니다 …처럼 말이다.
하느님이나 옛날의 임금 등 지극히 높은 이라면 그와 관련된 사물도 높여서 말할 수 있을 터이나 이는 예외다. 현대 들어 우리 높임말법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쪽은 이처럼 겹쳐서 높이거나 그로써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주는 쓰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