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10년(1464년), ‘김바회’(金把回)를 비롯한 중국사람 스무 명이 야인에게 잡혀갔다가 조선으로 도망쳐 왔다. 이에 통사 장유화를 딸려 보내 요동에 가서 풀어주도록 했다. 중국 사람이름에도 ‘바회’가 보이는 것이 특이하다. 옛말 바회는 요즘의 ‘바위’와 ‘바퀴’를 더불어 일컬으며 ‘ㅎ’이 꼭 들어 있었다. ‘바회’가 든 이름에 ‘바회·바회덩이·감바회·먹바회·벌바회·연바회’가 있다.
19세기 들어 ‘바회’(巖)는 ‘바위’가 되었다. 남쪽에서 ‘바우’라는 말이 널리 쓰이며, 경상도에서 ‘방우/방구·바구’, 전라 지역에서 ‘바위옷’을 ‘바구옷’이라 하므로 본디 ‘바구’라는 말에서 ‘바회’, 다시 ‘바위’로 바뀌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바위는 고구려 땅이름에서 ‘바의’, 신라 향가에서는 ‘바호/바오’(岩乎)라 했다.
거문도 동쪽 백도에 가면 ‘매바위·병풍바위·서방바위·쌍돛대바위’들이 있다. 어떤 모양을 이룬 바위너설도 ‘바위’, ‘흔들바위’처럼 떨어져 나온 것도 ‘바위/바윗덩이’라 한다. ‘돌’은 암석을 두루 일컫는다. 대한제국 때 ‘김바우덕’(金巖德)은 미모의 꼭두쇠로, ‘어름산이’(어름사니)로 이름을 떨쳤다. 그를 기린 안성의 바우덕이 축제는 ‘안성맞춤’ 축제가 되었다. ‘길산이·울음산이’에 쓰인 이름접미사 ‘산’이 줄타기 명인인 ‘어름산이’에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