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돈값을 미국돈과 견준다. 원-달러 환율이 얼마라는 식이다. ‘딸라돈’처럼 ‘급전’을 일컫기도 하고 ‘외화’를 달러로 비유하기도 한다. 오래도록 무역 결제 등의 통화로 삼아 온 까닭에 무척 낯익은 말이 되었다.
아예 ‘원’을 제쳐두고 ‘달러’로만 돈 얘기를 하는 때도 있다. 보유 외환이 2000억달러, 수출액이 3000억달러를 넘어섰다거나, 미국이 거덜난 은행들의 빚잔치를 돕느라 7000억달러짜리 구제금융법을 만들었느니, 국내 은행 지급보증에 1000억달러를 쓴다느니 하는 식이다. 외국돈 단위를 쓸 때는 우리돈으로 셈하여 보여주는 게 도리다. 1달러에 1300원으로 쳐 7000억달러면 910조원이니 우리 내년 예산 273조원의 세 곱절이 넘는 액수다.
오래 미국에 살다 왔거나 달러 거래를 자주 하는 사람은 익어서 무심코 달러를 들먹일 터이고, 어떤 이는 일부러 쓰기도 한다.
무심코든 일부러든 그 결과는 무섭다. 우리도 ‘원’을 버리고 ‘달러’를 쓰자는 주장이 그렇다. 환율도 출렁여 헷갈리는데다 이중적인 금융생활을 하느니 그게 낫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도 ‘미국’이 되자는 말과 같다.
사실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은 달러 지식과 정보에 시달리고 있다. 평생 달러로 물건 한번 산 일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 나라에서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익숙함은 점차 제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할 일이다. 스스로 버티고 이겨내지 않으면 넘어지고 휩쓸리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