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한테도 오륜이 있다. 주인에게 덤비지 않으니 그 첫째요, 큰 개한테 작은 개가 덤비지 않는다는 게 둘째다. 셋째는 아비의 털빛을 새끼가 닮는다. 넷째는 때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다. 다섯째는 한 마리가 짖으면 마을 개들이 따라서 짖는다.
더러는 개를 일러 삼육(三育)의 짐승이라 한다. 지혜로움, 어짊과 덕, 용(勇)과 체(體)를 이른다. <계림유사>에서 개를 가희(家)라 하였다. 오늘날도 충청 지역에선, ‘가이’라 이른다. 가이>개를 보면 우리말 변화와 궤를 함께한다. 만주어로는 구리(kuri)라 하고, 길랴크말로 가늰(kanyn)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구(狗) 소리와 유연성이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가희라 함을 보면, 개가 흔하지 않은 짐승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자의 자원으로 보자면, 개는 신한테 바치는 제수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르자면 헌신(獻身)의 ‘헌’이 그러한 경우다. 흔히 이바지라고 한다. 뒤로 오면서 희생(犧牲)에서 제물이 소로 바뀌었지만.
보훈의 달인 유월을 살아가면서 겨레와 나라를 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쳐 순국한 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내 안의 내가 얼마나 속 좁고 왜소한 존재인가를 되돌아볼 때가 있다. 밤을 지새워 짖어대며 어렵고 힘든 주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개도 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