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22년(1696년) 평안도의 굶주린 백성 이어둔(李於屯)이 사람고기를 먹었는데, 임금은 굶주려 실성해 한 일일 거라며 죽음은 면케 했다. 울산에서 마흔 명이 울릉도에 고기잡이 갔는데, 왜인들이 박어둔·안용복 두 사람을 잡아갔다. 두 사람은 일본 막부에서 울릉도가 조선땅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라는 ‘서계’를 받아냈다.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주에게 이를 빼앗겼는데, 대마도주는 죽도(竹島)가 일본땅이므로 고기잡이를 금지시켜 달라는 내용으로 위조해 사신을 조선으로 보냈다.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라 했다. 1694년, 조선은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밝히는 문서를 일본에 보냈다. 이태 뒤, 안용복과 박어둔은 다시 울릉도에 고기잡이 갔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송도(松島)까지 따라가 정박시킨 뒤 조선 바다에 들어와 고기를 잡지 말라고 꾸짖었다. ‘울릉·우산 양도 감세관’이라 칭하고 일본 호키주(시마네현)에 들어가 번주에게 범경 사실을 알려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사람이름에 어둔이·어둔개·어둔복이·어둔쇠(사내), 어둔이·어둔덕이(계집)가 있다. ‘어둔’은 어둡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어둔이’라는 땅이름도 여럿 있다. 울릉도 동쪽에 죽도(우산도)가 또 있다. 일본은 ‘죽도’라는 이름에 한때는 울릉도, 요즘은 독도를 꿰맞준다. 독도 문제를 분쟁화하려는 일본, 그들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그때 그때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