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군 황효원은 신씨가 아이를 못 낳는다고 버렸다. 임씨를 맞아 두 아들을 낳자 화목지 못하다며 임씨를 버리고 다시 신씨와 살았다. 신씨가 죽자 호적에 구사(종)인 ‘쟈근조이’를 아내로 올렸다. 상산군의 일을 사헌부에서 여러 차례 아뢰어 풍속을 바로잡도록 명을 내려 달라고 했으나 성종 7년(1476년), 임금은 더 논하지 말고 이씨(쟈근조이)를 상산군의 ‘움아내’(후처)로 삼도록 해 주라 일렀다.
중세 말 ‘쟉다·혁다·다’는 모두 작다는 뜻의 말이었다. 그러나 이름에서는 한결같이 ‘쟉다’에서 비롯된 ‘쟈근’(者斤/小斤)이 이름의 밑말로 쓰였다. 쟈근이·쟈근개·쟈근대·쟈근도티·쟈근만·쟈근모디·쟈근올미·쟈근토리 따위 사내이름과 쟈근이·쟈근가이(히)·쟈근금·쟈근년(녜)·쟈근덕이·쟈근비·쟈근아기·쟈근장이 …들 계집이름이 있다. <정종실록>을 보면 몸종을 ‘쟈근이’(小斤)로 부른다. ‘쟈근’이란 말이 작다는 뜻과 다른 뜻도 있음이 엿보인다.
크다는 말에 ‘한’과 ‘큰’이 있다. 땅이름에서는 ‘한’이 자주 쓰이고 사람이름에서 ‘큰’(大隱/大/大 )이 더 쓰였다. 사내이름에 큰가히·큰난이·큰노미·큰동이·큰쇠·큰아기·큰아희·큰이 따위가, 계집이름에 큰이·큰덕이·큰벌어지·큰비·큰아기 …들이 있다. ‘한’이 든 이름에 한이·한덕이·한덩이·한돌히·한비·한섬이·한쇠 …들이 쓰였는데, ‘한’이 꼭 ‘크다’는 뜻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