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구상의 ‘잡초송’만큼이나 사람이름이나 풀이름을 맛깔스럽게 담고 있는 작품을 글쓴이는 본 적이 없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듣기만 해도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고,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땅이름에서도 그런 것들이 제법 많다. ‘잔돌배기·장승배기·언덕배기’ 따위의 이름은 어떤 사물이 그 자리에 박혀 있다는 뜻을 갖는다. 잔돌이 많으니 잔돌배기요, 장승이 서 있으니 장승배기다. 언덕진 곳을 일컬어 언덕배기라 하고, 바위가 놓여 있으니 바우배기가 된다. 이런 이치 따라 서낭당이 있으면 서낭당배기요, 돌부처가 놓여 있으면 화주배기(화주는 중생을 교화하는 이라는 뜻에서 붙은 부처의 다른 이름)다. 여기서 ‘배기’는 ‘박히다’의 히읗이 약화된 상태에서 ‘이’ 모음 치닮기가 작용한 것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땅이름에서는 ‘이’ 치닮기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나타난다.
이름은 사람이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붙인 것이지만,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든 이름이 붙으면 그 이름값을 한다. “예부터 일러오기를/ 하늘이 녹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싹틔우지 않는다/ 하지 않았는가!”라고 노래한 시인의 말처럼, 빌딩과 아스팔트로 뒤덮인 신촌 네거리에 오늘도 잔돌배기가 살아남아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