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수와 열수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광개토왕 4년 8월에 왕이 패수(浿水)에서 백제와 크게 싸워 이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패수’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 선덕왕 때에 한산주에 ‘패강진’(浿江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황해도 평산에 ‘패강진’이 있었다고도 한다. 또한 패수를 열수(列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열’(列)은 ‘벌림’을 뜻하는 말이므로 거센소리가 되기 이전의 ‘패수’와 같은 말이다. 양주동은 <고가연구>에서 ‘패수’의 ‘배’를 ‘밝음’을 뜻하는 ‘ㅂ·ㄺ’으로 풀이한 바 있다. 이 풀이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으나 ‘패수’의 ‘패’나 ‘열수’의 ‘벌’은 모두 땅이름에 쓰이는 ‘벌’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다만 ‘벌’은 넓은 들을 뜻하며, 강을 낀 넓은 벌판은 사람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 땅이 된다.
광개토의 아들인 장수왕은 사천(蛇川) 들에 나아가 사냥하면서 흰노루를 잡았고, 이후 평양으로 천도한 임금이다. 장수왕이 사냥했다는 ‘사천’ 또한 ‘뱀ㄴ·ㅣ’다. ‘사천’과 ‘사수’(蛇水)는 같은 뜻이니 이 또한 ‘벌’이다. 사학자 이병도는 ‘패수’를 청천강이라고 했는데, 한백겸의 <동국지리지>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땅이름 ‘패강·패수·사천’ 등이 ‘벌’과 관련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패수는 ‘벌’을 낀 강을 두루 나타내는 보통명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패수’에서 확인되는 ‘벌’의 땅이름 분포는 고조선의 영토 고증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뿌리를 찾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쓸 만한 보기라 하겠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