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봉과 관악산
삿갓처럼 생긴 봉우리는 보통 ‘삿갓봉’이라 불린다. 우리나라 갓은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였다. 신분이 높은 이는 ‘감투’를 썼으며, 별감이나 서리, 또는 광대들은 ‘초립’을 썼다. 또한 떠돌이는 ‘패랭이’를, 군졸들은 ‘전립’을 썼다. 경기 여주의 삿갓봉은 스님이나 유랑인들이 쓰는 넓은 모양의 삿갓을 닮은 봉우리다. 또한 경북 문경의 옛이름이 ‘관문현’(冠文縣)인데, ‘고사갈이’(高思曷伊)라고도 하였다.
갓의 유래를 성호 이익은 ‘고깔’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한 바 있다. 고깔은 뾰족함을 뜻하는 ‘곶’에 모자를 뜻하는 ‘갈’이 붙어 된 말로 알려졌다. 고깔은 불교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중에는 무당·풍물꾼·나장·급창들도 이를 썼다. 그런데 실학자 이덕무는 고깔과 갓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고깔과 갓은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갓’은 단지 비를 피하고자 푸나무로 만든 도구였는데, 그것이 점점 높아지고 넓어져 여러 가지 형태로 변했다고 하였다.
이처럼 ‘갓’의 쓰임이 변하면서 땅이름에도 새 의미가 덧붙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관악산’이다. 풍수를 따르는 이들은 ‘관악산’에 ‘갓’이 들었으니, 그 기슭에 국립대학이 들어서고, 또 남쪽으로는 정부 청사가 설 수 있다는 말을 즐겨 한다. 그런데 이덕무는 “갓이 너무 크면 항우라도 짜부라지고, 갓이 망가지면 학자라도 망신스럽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벼슬아치·학자님들 두루 새겨들을 말일 듯하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