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다
들판에 가을이 그득하다. 이제 가을걷이를 할 때다. 오곡 가운데 으뜸인 벼를 거둬들이고 콩을 타작하는 철이 된 것이다. 시장에는 제철 사과와 배, 밤이 그득하고, 단감과 통통하게 살 오른 대추들도 나와 있다.
‘추수’(秋收)의 의미를 지니는 고유어가 ‘가을’이다. ‘가을걷이’를 줄여서 ‘가을’이라고 하고, ‘가을걷이하다’는 줄여서 ‘가을하다’로 말한다. ‘가을’의 중세국어 형태는 이다. 고장말에서 ‘가실하다’를 많이 쓰는데, 이는 옛말 흔적이 많이 살아 있는 형태다. 전날엔 받침 ㅀ의 ㅎ소리를 살려 ‘가을카리’도 인정해 썼으나 요즘엔 비표준어로 친다. 준말 ‘갈카리’도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고장말들엔 살아 쓰인다.
‘가을하다’는 ‘가을일하다, 가을걷이하다, 가을거두다, 가을걷어들이다, 가을추수하다’ 등으로도 쓰는데, 이때 ‘가을’은 지역에 따라 ‘가실, 갈’로도 쓴다. ‘가을하다’는 경기도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쓰이고, 준말은 ‘갈하다’다. ‘가실하다’는 충청 이남에서 많이 쓰는데, 제주도에서는 ‘ㄱㆍ실하다’로 쓴다. 북쪽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인 ‘가을일’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며, ‘가을일하다’는 동사가 된다. ‘가을걷이’는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임’이라는 뜻이다. ‘가을’은 ‘익은 곡식’을 의미하므로 ‘가을을 걷다’는 표현에서 ‘가을걷이’가 나온 것이다. 고장말에서는 한자어인 ‘추수하다’는 별로 쓰지 않고 ‘가을일하다, 가을걷이하다, 가을하다’를 많이 쓴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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