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자 탕문(湯問)편의 이야기. 태행산과 왕옥산은 원래 기주의 남쪽, 하양의 북쪽에 있었는데, 산 밑에는 90세가 다 된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로 막은 두 산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의 부인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반대했으나 다른 가족들이 모두 찬성했기 때문에 곧 공사에 착수했다. 이를 본 지수라는 사람은 이름 그대로 우직하고 미련한 노인네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그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있고, 또 그 손자의 아들이 또 있을게 아닌가. 이와 같이 자자손손 일을 계속한다면 이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네. 하늘에서 이 말을 들은 천제(天帝)가 우공의 꾸준한 노력과 성의를 가상히 여겨, 산 하나는 삭동 땅에, 다른 하나는 옹남 땅에 옮겨 놓게 했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 일이라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짐의 비유. 춘추 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이름은 어구(禦寇)]의 문인들이 열자의 철학 사상을 기술한《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다음과 같은 우화가 실려 있다.
먼 옛날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玉山) 사이의 좁은 땅에 우공(愚公)이라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방 700리에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두 큰 산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왕래에 장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공은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물었다.
“나는 너희들이 저 두 산을 깎아 없애고, 예주(豫州)와 한수(漢水)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아니, 늙은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저 큰 산을 깎아 없앤단 말예요? 또 파낸 흙은 어디다 버리고?”
“발해(渤海)에 갖다 버릴 거요.”
이튿날 아침부터 우공은 세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발해까지 갖다 버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갔다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지수라는 사람이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이 정말 망녕’이라며 비웃자 우공은 태연히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은 또 손자를 낳고 손자는 또 아들을… 이렇게 자자손손(子子孫孫) 계속하면 언젠가는 저 두 산이 평평해질 날이 오겠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것은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었다. 산이 없어지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사신은 옥황 상제(玉皇上帝)에게 호소했다. 그러자 우공의 끈기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역신(力神) 과아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각각 두 산을 업어 태행산은 삭동(朔東) 땅에, 왕옥산은 옹남(雍南)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그래서 두 산이 있었던 기주(冀州)와 한수(漢水) 남쪽에는 현재 작은 언덕조차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