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말기, 즉 기원 전 548년 위(衛)나라 대부(大夫) 손임보(孫林父)와 영식 등은 위나라 헌공(獻公)을 축출하고, 그의 동생인 상공을 군주로 삼았다. 복귀하려는 계책을 세우던 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영식의 아들인 영희에게 자신을 도와준다면 돌아가서 위나라의 정무(政務)를 그에게 맡기겠다는 말을 전했다. 영희는 매우 기뻐하며 곧 협조하겠다고 응답했다. 대숙문자(大叔文子)가 이 소문을 듣고, 영희의 우유부단한 태도를 걱정하며 말했다. 군자는 행동함에 그 종말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해도 좋은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 보기를 바둑 두는 일 같이도 여기지 않으니, 어찌 화를 면하랴! 바둑 돌을 들고 놓을 곳을 정하지 못하면 상대를 이기지 못하는데(擧棋不定不勝其 ), 하물며 군주를 모시는 일에 주관이 없어서야? 12년 후, 영희는 군주로 복귀한 헌공의 손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