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말년, 범증(范增)은 항량(項梁)에게 투항하여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다. 항량이 죽은 후, 그의 조카 항우가 그를 계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였다. 항우는 용맹하였지만 지모(智謀)가 없었으므로 주로 범증의 계획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였다. 범증은 홍문(鴻門)의 연회에서 유방(劉邦)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곧 유방은 범증과 항우를 이간시키는 공작을 꾸몄다. 항우는 이 계략에 휘말려 범증을 의심하여 그를 멀리 하였다. 범증도 몹시 분개하여 항우를 떠나고 말았다. 얼마후 범증은 병사하였고, 항우는 유방에게 망하였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은 범증론(范增論)이라는 글에서 범증이 항우의 곁을 떠난 시기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이고(物必先腐也, 而後蟲生之), 사람이란 반드시 먼저 의심을 하게 된 뒤에야 모함이 먹혀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物腐蟲生(Worms breed in decaying matter) 이란 내부에 약점이 생기면 곧 외부의 침입이 있게 된다 는 뜻이다. 불건전한 사회와 부패한 정치는 곧 범죄와 비리(非理)의 무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