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막힌 진터(배수지진)
한나라 2년(서기전 205년)에 한나라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지니까, 여러 나라가 초나라에 붙었다. 한나라 한신이 위나라를 치고 조나라를 치러 갔다. 조나라를 치려면 정경이라는 좁은 길을 지나야 한다. 조나라는 20만 병력을 정경 어귀에 배치했다. 조나라 광무군 이좌차(이좌거)가 성안군 진여에게 말했다. “한신 군대는 멀리에서 왔으므로 군량이 뒤에 처져 있습니다. 정경은 좁아 군대가 길게 늘어질 것이므로, 내가 기습 부대 3만을 끌고 샛길로 가서 한나라 군량을 끊겠습니다.”
성안군은 선비로서 정의로운 군략을 좋아하여 기습 부대 싸움을 싫어했다. 이 사실을 염알이꾼(첩자)으로부터 들은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정경의 좁은 길 어귀 30리 앞에서 진을 쳤다. 한신은 날랜 기병 2000명을 뽑아 모두 붉은 기를 들려 샛길로 가서 산 밑에 숨어 조나라 군진을 엿보게 해놓고 말했다. “우리 군대가 도망한다. 조나라 군대가 본부를 비우고 쫓아올 것이다. 그 틈에 조나라 본부에 들어가 조나라 군기를 빼앗고, 한나라 군기를 세우라.” 한신은 정경 어귀를 나와 강을 뒤로 하고 진을 쳤다. 한나라 장수들이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뒤로 하고 강을 앞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신이 답했다. “병법에 ‘군대를 꼭 죽는 고비에 두어야만 살길이 있다’고 했다.”
이것이 한신의 ‘뒤 막힌 진터’(배수지진)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